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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분들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잘 모르시겠지만 당시에 너무나 충격적이고 무서운 사건이었습니다. 

티비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나오면서 한번씩 다시 이야기 되는데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으로 인해서 무리한 구조로 건물을 짓고, 그리고 그것이 건물에 금이 가는등 징조가 미리 나타났지만 안일하게 대응을하고 계속 장사를 하려고 했던것이 엄청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사태로 나타난 것 입니다.

당시 삼풍 회장은 악마나 다름 없었습니다. 건물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그딴식으로 했으니까요.. 당시에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보세요 오늘같은 주말에 큰 백화점에서 친구나 가족을 위해 혹은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해 선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백화점 건물이 무너지면서 거기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건물과 함께 죽어버리는 끔찍한 사건..


1995년 6월 29일 오후 17:55

말그대로 악몽의 순간 입니다.

응답하라 1994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가 일어나고나서 칠봉이가 죽은줄 알았던 나정이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삼풍백화점에 도착한 나정은 다행히 백화점이 건너편에 있는 칠봉이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칠봉이를 안고 우는데요.. 드라마에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현실을 보면 정말 추악하고 무서운 사건입니다.

당시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입니다. 사고 7분뒤라고 하는데요. 주변이 폐허 입니다. 저 자리에 고급 백화점이 있었다니..

삼풍백화점 붕괴는 시작부터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삼 풍백화점은 1989년 12월에 영업을 시작했는데요. 삼풍백화점 건설 당시에 설계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원래는 백화점이 아닌, 아파트 상가 정도로 쓸 예정이었는데요. 삼풍백화점 회장이 정치권이 무슨 끈이 있었던지(정보부 창설멤버라는 이야기도있음) 갑자기 백화점으로 건물을 용도변경하게 되는데요.

4층짜리 건물이었지만 억지로 5층으로 늘리고, 공간활용을 위해서 기둥둘레도 줄이는 등 애초부터 안전을 생각하지 않은 부실공사였스빈다.

옥상에는 29토짜리 에어컨 3대가 있었는데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걸 반대쪽으로 옮기려면 기중기를 써야 하는데 돈든다고 그걸 끌어서 옮기는 과정에서도 무리가 갔다고 하네요

처참한 당시 현장 입니다…

삼풍백화점은 붕괴 며칠 전부터 이미 붕괴위험이 다분히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금이 가는건 물론이고, 백화점 천장에 금이 가면서 시멘트가루도 떨어지는 등, 많이 위험한 상황이 되었지만, 미친삼풍백화점 경영진들은 돈을 벌기위해 영업을 강행합니다.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에 사망자가 그나마 조금 줄었던것이, 당시 에어컨이 고장나서 사람들이 백화점에 오래 있지 못했다고 하네요. 에어컨 고장도 백화점 붕괴 전 있었던 여러가지 건물구조적 문제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붕괴 직전, 간부들은 피해가 생길 것을 알고도 종업원과 고객을 대피시키지 않았으며, 그저 5층만 폐쇄했으며, 웃긴것은 위험을 느낀놈들은 백화점을 빠져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회장놈은 몇일전에 보고를 받고 중요한 문서나 자신이 필요한것들은 지하쪽으로 옮겨놨었다고 하네요

결국 나머지 직원들과 고객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로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경 붕괴되었고, 삼풍백화점은 A동 전체가 붕괴됐습니다.

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502명이 사망, 937명이 부상을 당하고 6명이 실종되어 총 1,445명의 사상자를 낳는 등 건국 이래 최대 인명 피해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수습현장에서도 말이 많았습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한 건물에서 그냥 폭삭 주저 앉아버렸으니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도 굉장히 힘들고 아수라장이었는데요

사 고후 시신을 수습하고 사망자, 실종자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신의 일부만 발견된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망자 부상자 등을 집계는 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지자 두팔, 두 다리, 머리, 몸통 이렇게 모으면 1명으로 처리했다가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는군요

그리고 실종자수가 많았는데 제대로 찾지도 못하고..

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파트가 생깁니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건축사고,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안긴 사고, 그리고 한국인의 고질병 안전불감증의 대표적 사례인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엄마를 찾는 아이까지…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요..

살려달라고 하는 한 시민…

조금만 돈을 더 들여서 안전하게 시공했더라면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당시 삼풍백화점 회장 이준이 한푼이라도 더 자기 주머니로 넣기위해서 건물구조를 변경한것때문에 수많은 가족들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더 문제인것은 건물을 개판으로 지어놓은 뒤에도 계속해서 돈만을 위해서 달렸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기에 건물 붕괴를 더욱 가속화시킨 짓중 하나가, 같은 해 삼풍백화점은 2층에 '삼풍문고'라는 이름의 서점을 들여놓은 것인데요. 책이란게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같은 장소에 옷가게를 하는것과 서점을 하는것. 쉽게 생각해보면

방에 행거에 옷을 수십벌 걸어놓는것과 그 길이와 넓이에 책을 가득 꽂아놓는것은 무게가 몇십배이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약한 건물이 더 하중이 심해진것이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후

그리고 첫 생존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당시에 우리나라에 이런 대형 사고가 한번도 없었고 예상도 못했기에 뒷수습이 아주 어설펐습니다 이런 사고에는 초기 구조가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생존자가 있다 하더라도, 물을 마시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것도 심신이 굉장히 약해진 상태에서 오래 견딜수 없기 때문인데요

당시엔 체계적인 대규모 구조작업의 개념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구조 작업 자체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후속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많은 허점이 드러났습니다.

10시 58분에 첫 생존자를 확인하게 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최후의 생존자 3인 - 유지환, 최명석, 박승현씨

최후의 생존자 3인은 각각 최명석(남, 사고발생 9일만에 구조), 유지환(여, 사고발생 11일만에 구조), 박승현(여, 사고발생 17일만에 구조)[21]이다. 이후 최명석씨는 박승현씨의 고교동창을 소개받아 결혼을 했으며, 대학에서의 전공을 살려 GS건설에 재직중이며, 유지환씨는 결혼 후에 조용히 가정주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박승현씨는 국민연금공단에 취업했다가 '삼풍참사의 최후 생존자'라는 타이틀로 주변의 지나친 관심과 기대에 너무 부담스러워 퇴사하는 등 사회생활에 다소 적응하지 못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현재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에는

아크로비스타 건물이 들어왔습니다.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사장한테 물어보라는 회장..

당시 뉴스에 나왔던 삼풍백화점 회장 동영상 입니다.


그리고 삼풍백화점 사장이었던 이한상은 2002년 10월 출소 이후했던말이 위키에 올라와있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참 눈물나는 신앙심입니다.

"삼풍 사고로 상처받으신 분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가 있기를 기도한다. 삼풍사고가 영적인 전쟁의 한 사건이었다고 믿는다. 저와 함께 고난을 받으신 많은 분들의 고난과 헌신이 귀하게 쓰여 하나님 이루시는 일에 진보가 있다면 감사할 뿐" 이라는 말을 남기고 해외에 선교사로 나갔다고 하네요.

맹목적인 믿음에는 답이 없는듯 합니다. 이 또한 ‘일부’이고 ‘이단’이길 빕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무서웠던 사진한장..

글이 잘렸는데,

“한 여인이 주위에 떨어진 옷 몇벌을 도둑질하고 있다”라는 자막입니다.

당시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에 사지가 잘린 시체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백화점에 갈 사람들이면 어느정도 돈이 있었던 사람들인데요. 당시 삼풍백화점은 국내 1,2위 정도의 좋은 백화점이었기 때문에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사망자들의 몸에 있던 귀금속이나 옷, 가방등을 주워가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 사람중 한명입니다

이래저래 삼풍백화점 사건은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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